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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저것/독서

아들러의 인간 이해 / 알프레드 아들러

by FermeH 2024. 12. 24.

심리학은 늘 관심이 가는 분야다. 
늘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그 어느 아이도 이유 없이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교직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그 해결책만을 찾아내려고 했다.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해야만 했을까' 

 
그렇지만 교직에서의 경험이 쌓일수록 나머지 20%도 알고 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아이들의 모종의 경험에 기인한다는 것을 느낀다. 
잠시 단편적인 언행에서 눈길을 돌려 그 아이의 상황을 살펴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가정에서든 교우관계에서든 어딘가에 그 이유가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물론 사고와 행동의 선택의 여지도 있었겠지만, 
어쩔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면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찾게 되는 것이 심리학이다. 


 
그 어느 아이 하나 예쁘지 않은 아이가 없다.
그래서 가끔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를 만나도 그 아이를 대하는 감정은 분명 '애정‘이지 '애증'은 아니다.
'애증'의 인간관계는 외면하면 그만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식으로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아들러에 의하면 그것이 정말 가혹한 행위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사람은 공동체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무관심은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교직에 있으면서 한번 일부 아이들 때문에 마음 고생했던 뒤로, 아이들과 어느정도 마음의 거리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나에 대한 아이들의 순수한 긍정적인 관심은 결국 나를 친절하게 만든다.
 
특히 아침에 일찍 온 아이와 다른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매우 특별하다.
친구를 찾아 복도로 나서는 아이들도 있지만, 나는 그 준비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잤는지, 근래에 관심있던 일은 잘 흘러가고 있는지, 아침 밥은 잘 먹었는지
나 또한 시시콜콜한 이야기 거리를 던진다. 
답의 길이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너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나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지 알고 있다. 
아들러가 말한 인정 욕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아무래도 잘 지내는 아이보다는 잘 지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아이들은 교사로서의 나에게 저마다 다른 무게의 내적 친밀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 중 말을 잘 하지 않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른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 했다.
친한 친구와는 보통의 목소리 크기로 이야기를 했지만, 발표를 하게 되면 어김없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지만)
 
나와 둘이 이야기할 때에도 들릴락말락하게 이야기를 했다.  
학년 초에는 다른 아이들과 무리지어 다가올 때 말고는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학년 말에는 어느새 곁에 와 앉아있는 빈도가 높아졌다.
속으로 '다행이다', 하고 생각했다. 


 
우리 교실의 '선생님' 책상 옆에는 의자가 하나 있다. 
시기에 따라 앉는 사람의 목적이 달라지는 것 같다. 
학년 초에는 자신에 대해 알아달라는 듯 그 옆에 앉아 열심히 자기 소개를 한다. 

선생님, 저희 집은 강아지를 키워요.
- 어, 그래? 무슨 종인데?
말티즈인데, 얼마전에 태어났어요.
- 귀엽겠다! 이름은 뭐야?
초코예요! 아니 어제는 글쎄... 

 
여름방학 즈음에는 낯을 가렸던 아이들이 오기 시작한다. 
선생님에 대한 관심일지, 내적 친밀감일지.
그 친구들은 내 곁에 앉지만 딱히 말을 걸지 않는다.
나는 그저 기다려준다. 
 
학년 말에는 서로 다른 이유로 다가와 앉는다. 
아이들은 다가와 별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한다.
태권도장에서 친구와 있었던 일, 어제 동생과 싸웠던 일, 친구들과 놀러 갔던 일.. 
그 일들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저마다 다르다. 


올해는 유난히 목소리가 큰 아이들이 많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거나, 스스로의 판단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해 모둠활동은 결국 싸움이나 눈물로 끝나기 일쑤였고, 교우 관계에서도 문제가 종종 발생했다.
여기 저기서 이야기를 해보니 전반적인 성향 같기도 하다. 
 
그 아이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현명할까 일년 내내 생각했다. 
학년 초에는 개인 활동만 시켜볼까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아이들도 분명히 배워야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눈 딱 감고 대형 프로젝트를 두 개씩이나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보았던 변화들이 놀라웠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은 서로 소통 방식을 약속했다. 
돌아가며 솔직하게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마음을 다쳤는지 이야기하였으며 존중해 달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합의된 약속 아래 결국 끝까지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물론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 것에 대한 모종의 억울함과 분노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책을 읽고 나의 '애정공세'가 좀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 욕구는 내가 나로서 충분히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함에서 기인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의 태도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나는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동등한 관심을 주고 공정하게 판단하려 노력했다.
언제든 존중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아이들에게 자신이 우월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정감을 준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뿌듯해해본다. 


 
이처럼 아이들이 다가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은 아들러가 말한 것처럼 열등감으로 인한 인정의 욕구일 수도 있겠다.
가정 밖에서 인정 받고 싶은 어른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 일이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큰 일로 다가올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기에 
최선을 다해 사소한 부분까지 마음을 써 물어본다. 
나 자신이 인간에 대한 애정은 많지만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기에 그건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위해 그 노력을 아끼지는 않는다.
 
가끔은 그러한 노력의 '인위적인' 부분만을 아이들이 알아챌지 걱정되기도 한다. 
'선생님이 선생님으로서 책임을 다하려고 나에게 관심을 일부러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진심어린 관심이 더 큰 부분이니.
 
그렇지만 그것은 상당히 막중한 책임이다. 
나 또한 아직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고 싶은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사이에서 많은 부담감을 갖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내가 뭐라고 그렇게 인정 받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책을 읽고 마음을 조금 고쳐 잡았다.
내가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구는 인간으로 태어나 사람들 속에서 사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속성임을 깨달았다.
그 열등감과 그것으로 인한 우월 욕구,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기제인 허영심은 누구나 삶의 어느 지점에서나 갖고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어린 시절과 학교 생활, 지금까지의 이런 저런 활동들 속에서 나는 그 감정들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사람 사는 곳이 그런 곳인걸. 
그러니 나 스스로가 부족한 것은 당연하고, 부족한 지금의 상태로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인간에 대한 애정이 조금 더 몽글 몽글 피어오른다. 
오늘 아이들에게 조금 더 잘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연말이라 바쁜데.
큰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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