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보니 삶의 앞자리가 3이 되고, 살아온 세월이 10000일을 훌쩍 넘었다.
새로운(?) 나이 계산법으로는 아직은 아니긴 하지만,
어렸을 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나이에 다다랐다.
어릴 때부터 나는 '선택'의 중요성 앞에 많은 고민을 했다.
학교 숙제로 영문으로 된 시를 하나 발표해야 했다.
나는 그 때 로버트 프로스트의 두 갈래 길이라는 시를 골랐는데,
그 시를 온전히 나의 글로 해석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리고 삶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그 시가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삶은 숲과 같고 선택은 늘 탐험과 같았다.
20대까지 나의 모토는 '후회 없는 삶을 살자' 였다.
그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했다.
처음에는 중요한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였다.
시험과 수능 등에서 결과를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자 마음 먹었다.
참고로, 내 책상 앞에는 '2%를 채우기 위해서는 2000% 노력해야 한다'는 종이 쪽지가 늘 붙어있었다.
대학에 오고 나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용기 있게 도전하자는 의미로 바뀌었다.
감사하게도 멋진 분들을 만나면서 분에 넘치는 기회를 받았다.
그 기회를 정면으로 마주하여 경험하면 또 다른 깨달음이 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 생각은 지금도 흐려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삶을 살아가며 후회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선택이든 후회는 하기 마련이다.
사람이라면 내가 선택하지 못한 다른 쪽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내가 그때 그랬으면 어땠을까, 지금과 다르지는 않을까 끊임없이 생각한다.
한동안 그러한 후회에 빠져 지냈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우울증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 고생을 했던 시간들이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해온 것들은 한낱 먼지였으며 마음 속에 깊은 어둠이 생긴 듯 한없이 내려 앉았다.
누구나 한번쯤 겪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묵묵히 감내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 시간은 흘러 멀리 간 것도 아니었고 구분된 공간처럼 빠져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묵묵히 일상을 살아가며 스스로를 챙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졌다.
큰 변화를 앞에 둔 지금, 나는 다시금 선택에 대해서 생각한다.
앞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을까 돌아본다.
20대처럼 가슴 부푼 목표만을 향해 열정을 다해 달려갈 수 없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게 더 맞겠다.
물론 열정 넘치고 많은 것을 이루는 삶도 참 좋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이 작은 행복들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길거리에서 만난 좋아하는 노래가
서로 지나치며 인사하는 버스 기사님들의 인사가
가만히 들려오는 가습기 소리가
오랜만에 전해온 친구의 인사가
마트에서 발견한 세일 중인 좋아하는 음식 재료가
망한 줄 알았는데 은근히 맛있는 오늘의 요리가
책 속에서 우연히 만난 좋아하는 시 구절이
칙칙 따스한 밥 냄새를 풍겨오는 밥솥이
어느새 다 떠 버린 털실이
추운 겨울 날 얼굴을 따스히 비추는 햇살이
드라이브하면서 기분 좋게 나를 감싸는 바람이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 행복은 찾는 재미가 있다.
매일 같은 일상 같아도 살아보면 다 다른 매일이다.
어느새 은근하고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게 웃다가는 눈가 주름만 늘텐데 큰일났다.
시간이 갈 수록 많이 하게되는 말이 있다.
세상만사 일장일단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 말인 즉, 완벽한 선택은 없다.
완벽한 삶도 완벽한 사람도 없다.
이미 지나간 선택은 지나간 선택으로 흘려두려 한다.
후회를 다루는 드라마나 책의 결론은 모두 같다.
결국 두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이 중요하다는 것.
뻔하지만 살아갈수록 이 말에 동의하게 된다.
현재를 온전히 사는 것은 가장 어려우면서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2025년을 맞이하며 가족 단톡방에 새해 인사를 서로 올렸다.
그 중에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후회도 실망도 있을 수 있지만 모두 잘 살아봅시다.'
새해 인사인데, 아이 참 어머니도.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분명히 MBTI 가 T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이 말을 한번 더 되돌아본다.
이제 30% 지나간 삶이다.
앞으로 마주할 여러 가지 일에 모두 기뻐하고 행복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끊임없이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
삶의 숲을 걸어가며 두리번 주변을 둘러보려 한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을 온 마음으로 살피려 한다.
그렇게 행복해지려 한다.
'이것 저것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범한 인생 / 카렐 차페크 (1) | 2025.02.19 |
---|---|
감정의 색깔 / 김병수 (0) | 2025.01.21 |
아들러의 인간 이해 / 알프레드 아들러 (1) | 2024.12.24 |
댓글